외국인 부족에 주52시간 겹쳐 … 회사는 폐업 고민, 직원은 투잡 고민

50인 미만 기업 '주52시간' 7월 시행에 노심초사

초과근로 수당 못받아 수입 뚝
"택배나 배달 일 알아보는 중"

외국인근로자 부족 심각한데
그마저 불법사업장 찾아 떠나

자동화 설비 준비도 그림의 떡
사용자 "중기 경영하는 게 죄"

한국소비경제신문 승인 2021.06.18 22:09 의견 0

경기도 화성의 플라스틱 제조업체 A사 대표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직원 수가 50명이 되지 않는 이 회사에도 다음달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데, 이 회사 외국인 근로자들이 52시간제와 상관없이 야근을 시켜준다는 불법 업체로 속속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대표는 "초과 근로를 시켜주겠다는 불법 사업장의 꼬드김에 일부 외국인 근로자들이 나가버렸다"며 "외국인 근로자가 불법 사업장에 몰리면 법 테두리 안에서 정상 영업하는 업장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이 업체는 공장 라인 전부를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해 최소 13명의 생산직 직원이 필요하지만 불법 사업장으로 인력이 유출되면서 현재 직원이 5명밖에 남지 않은 실정이다. 여기서 외국인 근로자가 더 빠져나간다면 A사는 라인을 돌릴 수 없어 결국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경기도 안산 반월 도금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표면처리 업체 B사의 대표도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주 52시간제에 대비하기 위해 도입하기로 한 추가 설비가 코로나19 영향으로 연말께 들어오게 됐기 때문이다. B사 대표는 "결국 설비 투자로 자동화를 해야 근무시간이 줄어도 시간당 생산량을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며 "여유가 없는 영세 중소기업들은 투자가 쉽지 않아 정책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선 주 52시간제를 지킬 방법이 전혀 없다"며 "모든 기업들이 열심히 일하려고 하고 있는데, 각종 규제로 부담스럽게 만드는 정부가 너무 실망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코로나19 사태 회복 과정에서 대기업·중소기업 간 간극이 커지는 'K자형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주 52시간제까지 도입되면 영세 중소기업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표가 아닌 직원들도 주 52시간제 도입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급여 감소로 인해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닌 '저녁을 굶는 삶'에 내몰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직원들 대부분은 줄어든 급여를 대체하기 위해 '투잡'을 고민하고 있다. A사의 한 직원은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줄어든 급여를 벌기 위해 다음달부터 택배나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원래 누리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마음 편히 '저녁 있는 삶'을 보낼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B사의 경우엔 직원들이 모여 대책회의까지 열었다. 회의에선 "주 52시간제로 초과근로수당을 못 받으면 월급 15%가량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생활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쏟아졌다고 한다. 임금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건 외국인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다. A사에 근무 중인 한 인도네시아 직원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한국에 왔고, 지금도 월급을 받으면 거의 쓰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국제 송금을 한다"며 "초과근로수당이 큰 도움이 됐는데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월급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A사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 같은 영세 중소기업에 52시간제를 도입한다는 건 그냥 사업을 접으라는 뜻"이라면서 "직원 수가 부족한 걸 초과근로수당을 주며 각자 일을 더 하는 방식으로 버텨왔지만 30년 넘게 이어온 사업을 접을 때가 왔나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52시간제를 못 지키면 죄인이 되는 건데, 왜 자꾸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려는지 모르겠다"며 "사업을 접은 중소기업인이 '승자'고 빚 정리를 못 끝내 사업을 이어가는 기업인만 불쌍하다는 게 주변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52시간제 해법으로 제기하는 교대근무도 실질적으론 도입이 어렵다는 게 영세 중소기업들 지적이다. 애초에 사람이 부족해 교대근무 자체가 어렵다. A사 대표는 "내국인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외국인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대근무 도입은 불가능하다"며 "교대근무도 안되고 작업시간까지 줄면 성수기 물량도 못 맞추고 납기 지키는 것조차 힘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정부에서 근로자 수 30인 미만 기업에 한해 내년까지 노사 간 합의를 전제로 근로시간을 60시간까지 허용한 유예제도에 대해서도 중소기업계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B사 대표는 "현실적으로 30인 미만 기업과 50인 미만 기업의 규모는 거의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며 "굳이 30인 미만 기업에 대해서만 유예기간을 준 이유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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