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에 막혀 A급 개발자도 일못할판 … 연구소 해외로 옮길수도"

스타트업도 주52시간제 적용
투자 초기에 성과 내야 하는데
A급 인재 맘껏 일할 수 없다면
실리콘밸리 등 해외 이전 고려

스톡옵션 보유 땐 예외 인정 등
스타트업 특수성 반영 제안도

한국소비경제신문 승인 2021.07.14 23:10 의견 0
X

"스타트업에서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해야 하거나, 52시간 넘게 일하고 싶은 경우도 있는데 그때마다 대표이사가 감옥 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은 가혹하다."(실리콘밸리 VC 대표)

지난 1일 5인 이상 사업장에도 주 52시간 제도가 적용되면서 스타트업 업계에 '근로시간 논쟁'이 불붙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이미 대기업이 된 곳은 모르겠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스타트업은 단기적으로는 주 52시간 넘게 근무해야 하는 때도 있는데, 정부가 일률적으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스타트업 대표들 의견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 노동자에 속하는 스타트업은 대표와 공동창업자 4~5명이 함께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경우도 많아 기존 '사장 vs 근로자' 공식이 쉽게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일정 규모 이상이 된 스타트업에서는 개발자들을 소위 '갈아 넣어서' 제품을 만들기보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스타트업 대표들이 52시간 제도에 반대하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다. 결국 '일과 삶'의 균형과 각자의 가치관 차이 문제로 귀결되는 논쟁에서 '스톡옵션' 제도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며 화제가 된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대표는 주 52시간 제도를 일괄 적용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보는 쪽이다. 해당 스타트업은 이달부터 주 52시간 적용을 받게 됐다. 이 회사는 '인턴에게 책임을 준다'는 등 인턴들 자부심이 담긴 회사 평가 댓글이 달리고, 잡플래닛에서 리뷰 평점 통계 4.5점을 받는 등 직원들 업무 만족도가 높은 곳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저희 회사는 직장에서 직업인으로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며 "구성원들이 '52시간 넘기면 일 그만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데 '예, 일 더 하면 안 됩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출퇴근 시간 기록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구성원들이 '이거 꼭 기록해야 하나요?'라고 물었고, '예'라고 답하면서 회사와 구성원 모두 수준이 낮아진 기분이었다"며 "하향 평준화, 사다리 걷어차기, 조삼모사"라고 덧붙였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대기업과 달리 작은 스타트업은 집중적인 근무가 필요한 경우, 스톡옵션이나 실력 향상, 재미 등의 이유로 자발적으로 일을 더 하고 싶은 경우도 있는데 이를 막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개발 인력이 전체 직원 중 70%에 육박하는 국내 모빌리티 스타트업 대표는 "초과근무를 요구하지 않아도 '회사의 성장=내 성장'으로 여기며 늦게까지 일하는 분들이 있다"면서 "물론 이분들은 스톡옵션을 받아서 그런 것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분들이 한 사람이 아닌 10~20인 몫을 해내는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은 초기 투자 유치 이후가 매우 중요한데, 몇몇 A급 개발자 인재가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개발자에게는 주 52시간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지만, A급 인재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는 "저희도 노력하고 있지만, 정부의 집중 근로 감독 대상이 되거나 정부 방침과 충돌이 발생하면 본사나 연구개발(R&D)팀 근무 지역을 (주 52시간 규제가 없는) 미국 실리콘밸리나 싱가포르, 베트남으로 옮기는 방법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규모 투자를 받은 한 스타트업 팀장은 "스타트업은 시간 단위로 생산성을 따지기 힘든 구조"라면서 "업무 시간을 1시간 단위로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한국소비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