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SW 개발자 싹쓸이에 … 스타트업 96% 구인난 호소

매경·본투글로벌센터 설문조사

IT업계 인력부족 2만명 추정
47곳중 46곳 "연봉인상 체감"

빅테크 너도나도 연봉인상
스타트업들 생존위협 받아
"인재육성·주52시간 완화를"

한국소비경제신문 승인 2021.10.08 14:03 의견 0

인공지능(AI) 전문기업 딥브레인AI는 '스톡옵션 1억원과 성과급 1억원'이 적힌 대형 광고판을 서울 강남과 경기 판교 일대에 배치했다. 이 정도 연봉에 스톡옵션을 동시에 제시해야 원하는 인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같은 빅테크기업에서 우수한 인재를 대거 쓸어가자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도 고연봉과 복지를 무기로 맞섰다. 그러자 이번엔 핀테크 업체인 토스가 나섰다. 토스는 최근 네이버 출신 개발자에겐 연봉 외에 별도 보너스 2억원을 주겠다는 사례도 있었다. 직방은 특별 보너스 1억원을 내걸었는데 '따블(더블)'을 부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그나마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올라 투자를 많이 받은 곳들에 국한된 얘기다.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구인난을 호소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5일 매일경제신문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스타트업 해외 진출 지원 기관 '본투글로벌센터'가 센터 회원사 47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중 95.7%(45곳)가 "정보기술(IT) 개발자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9월 29일~10월 1일 진행됐다. 특히 72.3%(34곳)는 "IT 개발자를 구하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답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 기업인은 "개발자를 구하는 데 기본 석 달은 걸린다"고 토로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기업 대다수(40곳)는 직원이 50명 미만이다. 설문조사에 답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토스, 배달의민족, 펍지, 하이퍼커넥트처럼 자금이 넉넉한 IT 기업들이 고연봉으로 개발자들을 대거 뽑아가니, 스타트업 입장에선 개발자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이 때문에 주위에 있는 많은 스타트업이 인도·동남아시아 출신 개발자를 뽑고 있다. 국내 개발자 공급이 이른 시일 내에 더 늘어나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실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AI·클라우드·빅데이터·증강현실(AR)·가상현실(VR) 5대 분야의 IT 개발자는 올해 9453명, 그리고 내년엔 1만4514명이 부족하다. 해당 5대 신사업 분야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IT 분야까지 합치면 개발자 부족분은 2만명 이상이라는 게 업계 추정이다.

이 때문에 네이버는 지난 4월부터 기존 임직원 추천 채용 제도를 매달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달 1~10일 경력직을 채용하는 '월간 영입' 제도를 신설했는데, 인재 추천 시 보상금이 500만원에 달한다.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힐링페이퍼도 이달부터 사내외 누구나 인재를 추천할 수 있는 '인재 추천 보상제'를 도입했다. 회사는 추천을 받은 인재가 입사하면 추천인에게 100만~1000만원을 지급한다. 이나라 강남언니 인재 영입 리드는 "기존에도 사내 추천 비율이 25%로 높았는데 이를 제도화한 것"이라며 "현장 반응이 뜨겁다"고 설명했다. 기업가치가 8000억원에 달하는 홈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도 내부 추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결국 중소 스타트업들은 임금 수준과 사내 복지를 높여 우수 개발자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최근 게임사를 중심으로 IT 개발자 연봉이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1곳을 제외한 46곳의 스타트업 모두 "개발자 연봉이 올라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IT 개발자를 필요로 하는 기업과 프리랜서 개발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인 스타트업 '앱닥터'의 허석균 대표는 "신입 개발자를 이끌어줄 시니어 개발자가 업체별로 최소 1명은 필요한데 이들이 부족하다보니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력 개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연봉 수준을 물었을 때, 설문조사에 응답한 기업 47곳 중 절반 이상(26곳)이 최소 7000만원 이상 지급 가능하다고 밝혔다. 연봉 1억원 이상을 보장할 수 있다고 응답한 기업도 9곳이나 됐다. 다만 응답 기업 중 절반 이상(61.7%)이 경력 개발자에게 줄 수 있는 스톡옵션으로 전체 지분의 1% 미만을 제시했고, 스톡옵션을 통한 인센티브(44.7%)보다는 높은 연봉을 주는 것(55.3%)을 더 선호했다.

설문에 응답한 기업들은 "연봉 상승 흐름에서 개발자들 눈높이가 많이 올라가 있다" "(기존 인력 활용 차원에서) 개발자들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 배제가 절실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정부에 바라는 점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이들 기업은 세제 혜택 적용(33곳), 개발자 주 52시간제 적용 배제(20곳), 소프트웨어 직업교육 활성화(14곳)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종갑 본투글로벌센터장은 "개발자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선 단기적으론 인력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길 희망하는 스타트업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인재 확보 로드맵을 만들어 중장기적으로 개발 인력을 더욱 많이 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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