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부캐 있어요?" 거꾸로 멘토링

'사원이 간부 가르치기' 공기업 확산
야근·회식방식 등 MZ세대와 소통
"수직적 조직문화, 혁신 필요 느껴"
직장인 73% "리버스 멘토링 긍정적"
업무방식 실질개선 이뤄져야 효과

한국소비경제신문 승인 2022.01.04 15:54 의견 0

지난 10월 발전 공기업인 한국동서발전에서는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태어난 밀레니엄+Z세대) 직원 36명이 처·실장 12명을 가르치는 멘토링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3대1로 짝을 이뤄 카페와 레스토랑 등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MZ세대의 트렌드·관심사·여가생활 등을 전수했다.

멘토(Mentor·가르침을 주는 사람)가 된 20대 직원은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처장님과 제가 직접 선정한 주제로 허물없이 이야기하면서 거리감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멘티(Mentee·가르침을 받는 사람)로 참여한 김용기 해외사업실장은 “관심사와 취미 를 자유롭게 공유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동서발전은 이 제도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기존 멘토링과는 반대로, MZ세대 사원이 선배 또는 고위 경영진의 멘토가 되어 조언해주는 ‘리버스 멘토링’이 보수적인 공기관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후배가 주제와 운영방식·장소 등을 주도적으로 정하고, 선배는 조언을 경청한다. 역할을 바꾸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소통 방식이다.

29일 주요 경제부처에 따르면 중앙부처 가운데선 인사혁신처가 처음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우호 인사혁신처장을 포함, 국·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정기적으로 MZ세대 공무원과 소통한다. 야근·회식 문화 변화, 자유로운 휴가 사용, 편한 옷차림, 회의·보고 시스템 변화 필요성 등 MZ세대의 달라진 인식을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설명이다.

김 처장은 “일며들다(일에 스며들다), 부캐(부(副)캐릭터·본래 성격과 다른 또 다른 제2의 자아), 칼퇴근각(정시 퇴근을 예상) 등 MZ세대의 신조어를 배우는 게 낯설었다”면서도 “이들이 느끼는 달라진 공직관·직업관 등을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어 “공직사회의 수직적·권위적 조직문화를 수평적·우호적 소통문화로 혁신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코레일네트웍스, 캠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공기업과 국가보훈처, 전북 완주군청, 군산소방서, 충남 보령 해양경찰 등 여러 공공기관이 리버스 멘토링을 시행하고 있다.

리버스 멘토링은 고(故) 잭 웰치 GE 회장이 1999년 창안한 조직혁신 방법이다. 20년이 지난 요즘 한국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MZ세대 때문이다. MZ세대의 가치관과 일하는 방식이 이전 세대와는 달라 직장 내 반목·갈등 가능성이 커져서다. MZ세대를 이해하려는 기성세대 노력의 일환이다. 교보생명·신한라이프·LG에너지솔루션 등 민간 기업들은 이미 리버스 멘토링을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MZ세대가 머잖아 해당 조직의 주역이 된다는 점에 더해, 주요 소비자인 MZ세대를 알아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인크루트의 직장인 1022명 대상 설문에서도 리버스 멘토링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매우 긍정적 12.4%, 대체로 긍정적 60.5%)인 반응이 약 73%를 차지했다. 긍정적 응답은 M세대(1980~1994년생)가 67.0%, 베이비붐(1955~1963년생)·X세대(1964~1979년생)가 85.1%로 기성세대가 오히려 더 긍정적인 반응이 높았다. 정연우 인크루트 홍보팀장은 “M세대는 리버스 멘토링을 세대 간 소통할 기회와 수단으로, 기성세대는 유연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설문에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리버스 멘토링은 전반적인 기업 문화를 젊게 하고, 조직에 혁신성과 역동성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질적 업무방식 개선 없이 기성세대에게 ‘젊은 세대를 이해하라’는 식으로 강요하게 된다면 조직문화 개선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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