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경제시론] 전국민 고용보험의 달콤함 속에 숨은 음험한 냄새

강재규 승인 2020.05.21 17:15 | 최종 수정 2020.05.21 17:50 의견 0


지금은 정확히 세가지 정국이 겹치는 시점이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가 막 시작됐다는 점이고, 둘째는 21대 국회 시작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다른 하나는, 최악의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말그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들면서 예상됐던 시나리오는 개헌론과 전국민고용보험제 카드였다. 그 중에 전자가 정치권에서 시큰둥하듯 하자 청와대는 단번에 후자의 카드를 '숙제'처럼 내밀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지난 1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특수고용직 9개 직종에 대해 내년에 고용보험을 들 수 있도록 고용노동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국민 고용보험제로 가는 수순이라 읽혀진다.

고용노동부는 추후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특수고용직 종사자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신속히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특수고용직 직종으로는 △보험설계사 △골프장캐디 △학습지교사 △레미콘기사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기사 등이 있다. 이 9개 직종 노동자는 77만명 규모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더 나아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금년 말까지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위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마련하고 이후 사회적 대화를 거쳐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사회적 위기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전국민 고용보험, 나아가 공유경제 등 달콤한 언어앞에 그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표면적으로 그럴싸한 선의가 끝까지 선의로 남아질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현 야당이 틈만 나면 혹평의 나팔을 불어댄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을 여기서까지 비난할 바는 아니다. 확신은 가되 증명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기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민고용보험은 다른 문제다. 이 제도는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시행 중인데 이들 나라처럼 모든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 압도적인 소득세율을 도입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활동 인구의 50%만이 현재의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다. 나머지 50%를 보험제도의 보호 하에 두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달콤하고 진보적인 제도의 도입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보통 어지러운 문제가 아니다. 우선 그 보험료를 누가 낼 것이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푼이 아쉬운 특수고용, 자영업자들에게 실업 (계약해지와 폐업)시의 수당을 위해 평소에 보험료를 내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전가할 것이다. 온국민이 되었든, 고소득자들이든, 관계없는 기업들이든. 지금도 전국민 의료보험제로 인해 재원 부족에 대한 후세대 전가가 문젯거리로 부상한지 오래다.

문제는 또 있다. 해고를 당하는 근로자와 달리 자영업자는 언제든지 자기가 폐업 또는 계약 갱신 거부 또는 해지를 할 수 있다. 이들 개인사업자, 자영업자는 실업 수당을 타기 위해 조금만 어려워지면 폐업 또는 계약해지를 할 공산이 크다. 또는 본인의 사업은 접고 가족의 차명으로 다시 사업을 내는 등의 보험을 타기 위한 도덕적 해이를 통제한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면 당연히 보험료는 계속 상승하고 폐업을 쉽게 선택하는 고용있는 자영업들로 인해 실업은 증가할 것이다. 

한 보수 논객은 다른 나라가 잘 안 하는 일을 할 때는 그만큼 신중할 것을 경고한다. 선의로 포장된 지옥에 이르는 길이 놓이는 것은 그만큼 쉽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시행 중인데 이들 나라처럼 모든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 압도적인 소득세율을 도입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인들은 언제고 제 돈으로 제도나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늘 남의 돈으로 선심을 쓰는 축이다. 선심은 내게 표를 쉽게 몰아주기 때문이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이 재원 고갈을 우려하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전국민 고용보험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전 국민을 개돼지처럼 사육되길 좋아하는 국민으로 만들어 말 잘듣는 우매한 국민들로 만들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성급히 시행할 일은 아니다. 이미 유사한 사례는 남미 일부 국가의 실패한 실험에서 보아온 바가 아닌가. 달콤함 속에 감춰진 음습한 냄새가 솔솔 풍겨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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