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간 200명 인생 연기한 오영수, 세계인의 '깐부' 되다

제79회 美 골든글로브 시상식

한국배우 첫 골든글로브 영예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수상
"'넌 괜찮은 놈' 스스로 칭찬,
세계 시청자 분들께 감사"

1963년 극단 광장 입단 이후
200편 넘는 작품 배우 외길

밀려드는 상업광고 거절하고
연극으로 돌아가 평정심 지켜

한국소비경제신문 승인 2022.01.11 20:07 의견 0

'대학로 터줏대감'이던 연극배우 오영수(78)가 연기 인생 60년 만에 세계인이 자랑하는 '깐부(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를 뜻하는 은어)'가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지 116일 만인 10일(한국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쥐면서다. 한국 배우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호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극중 마지막 남은 구슬을 건네며 "우린 깐부잖아"라며 잔잔한 감동을 건넨 배우 오영수는 이제 세계 관객·시청자와 호흡하는 자리에 올랐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미국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는 이날 시상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올해 제79회 골든글로브 수상자를 발표했다. 배우 오영수는 골든글로브 TV시리즈 드라마 부문 가운데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랐고, 이날 오전 11시께 일찌감치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대를 모았던 '오징어 게임'의 작품상 수상, 배우 이정재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한국 배우의 첫 골든글로브 수상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수상 사실이 전해진 직후 오영수는 넷플릭스를 통해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며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다.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배우로서 자신을 응원했던 시청자들과 연극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감사하다"고도 덧붙였다.

'배우' 오영수의 이번 골든글로브 수상은 '묵묵히 외길을 걷는 배우에겐 후회도 실패도 없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일러준다.

1944년 개성에서 태어난 오영수의 연기 인생은 햇수로 60년 전인 1963년 시작됐다. 친구를 따라 극단 '광장'에 입단해 연극인의 생을 택한 오영수는 평생 200편이 넘는 연극과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연기를 통해 200명의 인생을 살았다"며 연기에 바친 삶의 의미를 회고하기도 했다.

이어 마흔에 들어선 1987년부터는 국립극단 단원이 되어 무대 위를 지켰고,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지키는 대배우로 성장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현재도 무대를 떠나지 않고 있다. 특히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드라마 '선덕여왕' 등에서 스님으로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스님 전문 배우'라는 웃지 못할 오해를 사기도 했다. 5년 전에는 황동혁 감독의 전작 '남한산성' 출연을 제안 받았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후 황 감독의 신작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으로 낙점되며 널리 이름을 알렸다. '깐부끼리는 니 거 내 거가 없는 거야'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의 공통점은 사는 게 재미없다는 거야'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가 없지'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등 숱한 명대사를 시청자 뇌리에 각인시키며 '깐부 옹' '깐부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으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전례 없는 흥행 속에서 그는 무대로 돌아갔다. 특히 "연기를 통해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갑자기 부각되니까 일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배우로서 갖고 있던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혼란스러웠다"며 "자제력을 잃진 말아야지 하는 중에 이 연극이 왔다. 다행히 평심을 되찾았다"고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오영수는 최근 개막한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옥스퍼드대의 젊은 교수 루이스와 '종교와 인간'에 대해 토론하는 무신론자이자 정신분석학 박사인 프로이트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이번 오영수의 수상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얻은 성과란 점에서도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가 수상한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는 '더 모닝쇼'의 빌리 크루덥, '석세션'의 키런 컬킨, '더 모닝쇼'의 마크 듀플라스, '테드 라소'의 브렛 골드스타인이었다. 이중 크루덥은 2007년 제61회 토니상 남우조연상을 받은 관록 있는 배우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연기한 동아시아 노년 배우의 수상은 골든글로브 변화를 일러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마지막까지 백인 위주 보수성을 지킨 곳이 골든글로브였는데 한국인 배우가 연기상을 드디어 받게 되면서 우리나라 콘텐츠가 주류로 확실하게 인정받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워낙 엄청난 열풍이었고 해외에서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았는데 이번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타지 못한 건 골든글로브의 마지막 보수성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한국소비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