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주주의 국가에서 역린(逆鱗)의 의미

김진항/ 칼럼니스트

강재규 승인 2022.03.23 18:26 의견 0


역린이란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한다. 용이란 잘 친하기만 하면 올라탈 수 도 있지만 턱 아래에 있는 역린이라는 이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하여 건드린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용이란 상상의 동물로서 동양에서는 절대 능력자를 말한다. 따라서 왕권 시대에는 왕을 용에 비유하였다. 왕이 앉는 의자는 용상, 왕이 입는 옷은 용포라고 하고 그 옷과 모자에는 용을 그려 넣어 왕의 권위를 상징했다. 아마도 왕의 권위를 세우고 유지하는 데 이 상상의 동물인 용을 인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용의 역린을 왕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비유한 원조는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의 법가 한비의 한비자 12편 '세난편'에서 유래한다. 왕의 뜻에 거역하는 것이 그 만큼 어렵고, 해서는 안 되는 일로서 처세의 한 방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흔히 역린을 상관의 노여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시대적 정서에 맞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은 왕에 비유하여 역린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말이 안 된다.

민주주의 공화국에서의 권력은 대통령이 갖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갖고 있다. 대통령은 다만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일정 기간 법에 정한 바에 의해서 권력을 위임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예전에 왕에게 있었던 권력은 이제 국민에게로 전이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예전의 역린을 건드린다는 의미는 왕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오늘날에는 국민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역린을 건드린다는 말의 의미는 국민들의 순리적 생각을 거스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므로 선출직이던, 임명직이던 그들이 국민들이 생각하는 순리를 거스르는 짓한 것이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이제 용은 왕이 아니고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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