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무라(MOORA) 작가님 첫번째 이야기 1-10
[RED 빨강 이야기] 1-10. 입학식 하루 전
한국소비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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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8 15:15 | 최종 수정 2021.06.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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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빨강 이야기]
무라 (MOORA)
용기 내어 두류공원에 몇 번 더 찾아가긴 했지만 멀리서 봐도 고조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에 다가가기 힘들었다. 은실을 보기는 커녕, 다음에 다시 찾아오라 했던 은실의 오빠조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방호벽과 공사할 때 치는 철제 가림막 따위의 것들이 상가 건물 주변에 빙 둘러져서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가림막 입구에는 빨간색 스프레이로 X자 표시가 커다랗게 그어져 있었고 욕도 난무하게 쓰여 있었다. 일준막도 여러 개 걸려 펄럭거렸다. 그 모습은 일준한테 상당히 위협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일준은 그곳에 점차 발을 끊게 되었다.
오랜만에 승재가 집에 놀러 왔다. 할머니는 귤바구니를 갖다 주셨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저녁상을 갖고 올라오셨다. 오랜만에 일준의 방에서 먹는 저녁이었다. 할머니는 승재에게 집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할머니의 탐탁치 않은 표정을 의식한 일준은 승재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승재는 상관없는 것 같았다. 승재는 있을 곳이 없어서 잠시동안 옆동네의 고모 집에서 머무르는 중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밥을 다 먹고 방에 둘만 남았을 때, 승재로부터 입학식 날짜를 전해 들었다. 아쉽게도 승재는 다른 학교에 입학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입학식 하는 날은 다 똑같아.”
승재가 귤을 까며 말했다. 3월 4일 오전 10시 30분, 운동장으로 오면 된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일준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따라 승재는 많이 바쁜 것이 분명했다. 전처럼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만난다고 하더라도 마음껏 놀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기 일쑤였다. 늦게 들어가면 고모한테 혼난다고, 승재는 말했다. 그래서 늦은 저녁만 되면 일준 혼자 심심해지곤 했다.
“내년에도 많이 놀면 좋겠다.”
일준이 중얼거렸다. 승재는 말없이 귤을 반으로 갈라 한 입에 쏙 집어넣었다. 귤이 많이 시었는지 승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귤을 다 먹고, 승재는 금방 집으로 돌아갔다. 일준이 집 근처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했지만 승재는 극구 만류하고 뛰어갔다.
밤이 늦도록 일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내일이었다. 일준의 베개 밑에는 삐뚤게 이름 석 자 쓴 명찰과 빨간 리본이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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