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무라(MOORA) 작가님 첫번째 이야기 1-11

[RED 빨강 이야기] 1-11. 입학식

한국소비경제신문 승인 2021.02.05 12:32 | 최종 수정 2021.06.17 18:11 의견 0


[RED 빨강 이야기]

무라 (MOORA)

운동장에는 일준 또래의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운동장 가장자리 귀빈석에는 학부모들이 모여 서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엄마 품에 안겨 있고 걔들 중 누군가는 울기도 했다. 제 친구들과 모여 즐겁게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남자아이들 무리가 가방을 휘두르는 채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것을 일준은 보았다. 문득 외로움이 밀려왔다. 승재라도 있었다면 한결 나았을 텐데. 혼자 있는 친구들도 분명 있었지만, 일준처럼 제가 있을 곳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복잡한 풍경에 일준은 쉴 새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10시 30분부터 입학식이 시작됩니다.”

확성기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운동장에 나와있던 사람들이 각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1반, 1반 여기로 모이세요!”

“5반 친구들, 여기에 두 줄로 나란히 서세요!”

팻말을 지키고 서있던 선생님들이 다시금 반 이름을 외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점차 대열을 갖추어 줄을 섰다. 부모님 품에 안겨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도 씩씩하게 제 자리를 찾아 갔다.

분명 기대에 차서 힘찬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는데, 막상 학교에 도착하니 한참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은실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은실을 어떻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일준은 비뚤게 맨 빨간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너 왜 여기 있어?”

바로 뒤에서 들리는 굵직한 목소리에 일준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멍하니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은실의 오빠였다. 면도를 하고 나름 차려 입어서 그런지 저번에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일준은 대답하지 못하고 울먹거리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왜, 왜 울어?”

당황했는지, 그가 금방 자세를 낮추고 일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울지 말고, 너 몇 반이야?”

“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일준은 자기가 몇 반인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선생님들이 든 팻말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몇 반이야. 내가 데려다줄게.”

“저는 그냥… 은실이 찾아야 하는데…”

일준이 훌쩍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아아, 은실이랑 같은 반이야? 진작 말하지.”

일준은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일준의 손을 잡고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아이들이 줄을 맞추어 선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일준은 눈물을 닦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이끌려 갔다.

“오빠, 왜?”

은실이었다. 은실의 오빠가 일준을 은실의 옆에 세웠다.

“같은 반이라며. 얼른 친구 손잡아줘.”

그렇게 말하고 그는 학부모석으로 멀어져갔다.

“일준이야?”

은실이 일준을 불렀다. 운 것이 들킬까 봐 일준은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은실이 일준의 손을 잡아주었다. 일준도 일준의 손을 꼭 잡았다.

은실은 3반이었다. 3반의 선생님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일준은 꼭 잡은 은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은실과 입학식을 함께 한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은실이 고개를 숙여 자꾸만 일준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일준은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둘은 배시시 웃었다.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일준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앞으로 나란히’라 외치며 앞으로 팔을 쭉 내밀고 열을 맞추어 섰다.

‘그냥 이렇게 학교 가면 되는데, 할머니는 이게 뭐가 어렵다고…’

일준은 생각했다. 그리고 내심 우쭐하기까지 했다. 방금 전까지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설렘밖에 남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슬금슬금 줄에서 이탈하는 아이들을 제자리에 세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계속해서 수를 세면서도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면 힘든 기색을 숨기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10분 뒤 입학식이 시작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선생님의 걸음이 바빠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수를 두 번, 세 번 세었고 그래도 어딘가 이상하자 옆 반 선생님을 불렀다.

둘 사이에 몇 번의 귓속말이 오간 후, 자리로 돌아온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3반 아이들을 불러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집중!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크게 대답하면서 손을 드는 거예요. 알았죠?”

“네에!”

3반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일준도 그 속에 섞여 힘차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쓱 훑어보더니 이름 순으로 호명하기 시작했다.

“고영준.”

“네!”

“김예은.”

“네.”

앞줄에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박은실.”

은실도 선생님이 호명하자 힘차게 대답했다. 일준은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선생님한테 집중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일준의 이름을 끝까지 부르지 않았다. 일준은 운동화 코로 애꿎은 운동장 흙을 툭툭 찼다.

“너를 깜빡하고 안 불렀나 봐!”

은실이 배시시 웃으며 일준을 툭 쳤다. 일준도 따라 웃긴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걸 말해야 할지 말지 일준은 고민했다.

“왜 한 명이 더 많은 것 같지?”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자기 이름 안 부른 사람 손 들어보세요.”

일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명단을 한 번 더 확인하고는 일준한테 다가왔다.

“그래, 이름이 뭐야?”

선생님이 물었다. 다정한 목소리에, 일준은 조금이나마 안심했다.

“저, 김일준이요…”

일준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주위의 시선이 온통 일준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김일준… 김일준…”

선생님이 일준의 이름을 되뇌며 명단을 쓱 훑었다. 그리고는 다소 단호해진 표정으로 일준을 쳐다보았다. 일준은 선생님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일준이야, 잠깐 선생님 따라오자.”

일준은 선생님 손을 잡고 운동장 앞쪽 구석으로 갔다. 그리고는 쪼그려 앉아 일준과 눈을 마주쳤다.

“일준 3반 맞아? 3반 명단에 일준 이름이 없는데.”

“저는…”

“가방은 어디 있어. 안 매고 온 거야?”

“네? 네…”

“그래, 괜찮아. 그러면 일준이 몇 반인지 선생님한테 알려줄래?”

일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앞이 흐렸다. 선생님은 3반 아이들이 모여 있는 쪽을 한 번, 시계 한 번을 보더니 한숨을 폭 쉬었다.

“혹시 다른 반으로 잘못 안 거 아니니?”

선생님이 다그치듯 물었다. 일준은 어쩔 줄 몰랐다.

“그냥, 저도 입학하려고…”

“뭐라고?”

“저도 입학할 거예요. 저도 학교 가고 싶어요.”

일준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오늘만 몇 번을 우는 건지, 창피했다. 혹시나 은실이 보고 있을까 봐 더욱 그랬다.

“잠깐만. 일준이야. 울지 말고.”

“네?”

”너 몇 살이니?”

선생님이 침착하게 물었다. 일준은 순간 머리를 굴렸다. 분명히 일준은 작년에 일곱 살이었다. 그건 틀림없이 사실이 분명했다. 같은 일곱 살인 승재와 친구 하면서 친하게 지냈으니까. 하지만 올해 역시 일곱 살이라고 했다. 그게 이해가 가지는 않아도 차마 여덟 살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순간 할머니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양력이니, 음력이니, 일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던 어려운 말들.

“여덟 살이요.”

“그래?”

“네, 근데 음력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선생님이 멈칫하고 일준을 바라보았다.

“음력으로?”

선생님이 되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준의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명단을 여러 번 넘겨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여기 오면 안돼. 어서 집으로 돌아가.”

더욱 단호해진 말투였다. 그리고는 다시 3반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이제 정말 입학식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일준은 옹기종기 모여 선 아이들을 죽 둘러보았다. 여기에서는 은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저 수많은 아이들 중 어딘가 있겠지. 일준을 찾고 있기는 할까? 볼을 문질러 말라가는 눈물자국을 지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실이 일준을 찾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일준은 빨간 리본을 풀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명찰은 고정장치를 풀어 주머니에 멋대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을 달려 나갔다. 찬바람이 얼어버린 볼이 따가웠다.

저작권자 ⓒ 한국소비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