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무라(MOORA) 작가님 첫번째 이야기 1-12
[RED 빨강 이야기] 1-12. 그 후
한국소비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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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8 17:03 | 최종 수정 2021.06.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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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빨강 이야기]
무라 (MOORA)
집에 돌아온 날 밤부터 일준은 크게 앓았다. 기침을 하며 가슴 통증을 호소했고 열도 38도까지 끓어올랐다. 어느 날은 꿈을 꾸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운동장과 학교, 교실을 전부 돌아다녔지만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나가려고 보니 문이 잠겨 있고 완전히 깜깜한 밤이 되어있었다. 어디선가 일준을 쫓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일준은 귀를 막으며 복도를 내달렸다. 일준이 달리는 곳마다 전등이 계속해서 꺼졌다. 일준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달리다가 걸음이 꼬이고 말았다. 발을 내딛은 곳에 바닥이 없었다. 일준은 비명을 지르며 끝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잠에서 깬 일준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결국 급히 병원에 다녀와서 열은 내렸지만 기력이 쉽게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죽을 먹고는 경증의 위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누구도 일준이 왜 이렇게 아픈지 알지 못했다. 오직 일준만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학교에 간 것을 일준은 후회했다. 학교에 관한 꿈을 꾸고 나면 그날 하루 종일 몸이 무거울 지경이었다.
일준은 하는 수 없이 하루 중 대부분을 누워있었다. 가끔 승재가 놀러 와 학교에서 받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일준은 하나도 먹지 못했다. 그렇게 보름 가까이 앓았다. 할머니는 경로당에 발을 끊고 하루 종일 일준을 돌보았다.
온전히 회복이 되고 나서도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승재는 몇 번 안부 차 일준의 집에 놀러 오고는 했다. 하지만 그 빈도가 점점 뜸해지더니 요즘에는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일준의 학교는 걸어 가기에는 조금 멀었다. 승재가 머문다는 고모의 집도 위치를 정확히 몰라서 찾아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답답하지만 그저 승재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준이 하염없이 기다릴 동안, 승재는 새 친구를 많이 사귄 모양이었다. 언젠가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승재를 마주쳤다. 눈이 오던 날, 우는 승재와 손을 잡고 영원한 친구 사이를 약속했던 그 길목이었다. 승재의 주위에는 모르는 얼굴의 친구들이 많았다. 실내화 가방을 흔들며 장난 치는 승재는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차마 승재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했다.
은실도 마찬가지였다. 일준은 몇 번 은실을 만나러 학교를 배회했다. 하지만 한 번도 일준을 만난 적은 없었다. 일준은 점점 지쳐갔다. 이제는 좋아하는 마음보다도, 과거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그리워서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였다.
일준은 다시 한 번 두류공원을 찾아갔다. 어떠한 계획을 갖고 간 것은 아니었다. 은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두류공원으로 올라와 집으로 돌아갈 때라도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두류공원에 올라 상가 쪽을 바라보고, 일준은 깜짝 놀랐다. 일준의 키보다 큰 공사 안내판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공사로 인해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었다. 안내판이 가리킨 곳에는 방호벽도, 일준막도, 철제 가벽도 없었다.
공사 가림막 펜스로 어느 정도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높이가 낮았으니 알 수 있었다. 상가건물이 없었다. 두류 이발소가, 방앗간이 없었다.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담벼락과 마을을 이루던 집들도 전부 사라진 듯했다.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 일준은 가늠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흙이 뒤엎어지고 공사장비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일준은 터덜터덜 걸어가 나무 벤치에 주저앉았다. 한동안 그 광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괴로운 마음에 주먹을 꼭 쥐었다.
산 중턱에 해가 걸리고, 어둠이 내렸다. 속이 쓰리는 듯했다. 점차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누르고, 일준은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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